[여행다움]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시간, 부여
-백제의 시간-
동쪽으로 논산, 서쪽으로는 보령과 서천, 그리고 중간에 부여가 자리를 잡았다. 부여, 이름이 주는 견고한 분위기가 있다. 역사의 힘이 느껴지는 장소랄까. 두 글자만 보아도 순식간에 과거로 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알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편견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여에 있는 모든 순간이 색다르다. 시간여행을 하듯, 번영했을 과거의 백제를 상상하게 만든다. 겨울이라서, 야외에서 돌아다닐 때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굴리며 다녔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평소 역사 유적지 탐방을 즐겨한다면 부여는 더없이 완벽한 장소가 되어줄 것이다. 발이 닿는 곳곳이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겨있을 테니 말이다.
백제의 수도를 지키던 성, 부소산성
부소산성은 부소산에 지어진 ‘산성’이다. 쉽게 말하면 백제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산봉우리에 머리띠를 두르듯 만들어진 형태로, 백제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한 산성이 혼합되어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이라 불렸다고.
부소산성에는 유명한 몇 개의 유적이 있다. 그것을 기점으로 삼아서 천천히 살펴보면 좋다. 가장 먼저 닿는 곳은 정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삼충사다. 백제의 충신인 성충, 홍수, 계백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그리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보면 그 유명한 낙화암이 나온다. 삼천궁녀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내려와 지어진 슬픈 이름이다. 울타리로 막혀 있지만 그 아래 아찔한 거리에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 바로 뒤에는 백화정이 내려다보고 있는 형태다. 강바람이 차갑기는 하지만 걸어오는 동안 살짝 흐른 땀을 시원하게 식혀줄 정도라 기분 좋다.
배를 타러 가기 위해 고란사 방향으로 향한다. 스스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은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기 위한 사찰이다. 규모는 작지만, 절벽을 등지고 선 사찰의 분위기가 은은하니 고요하다. 잠깐 머물러 살펴보아도 슬슬 걸으며 지나쳐도 무리가 없다.
유유자적 백마강을 떠돌다, 부여 황포돛배
낙화암에서 보았던 돛배는 구드래나루터에서 탈 수 있다. 배 한가운데에 작은 기와집을 옮겨 놓은 듯한 모양새다. 부여 황포돛배는 구드래선착장에서 고란사 선착장을 왔다 갔다 하며 백마강을 누린다.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잔잔한 강물을 따라 주변 경치를 조용히 감상하기 좋다. 특히 황포돛배를 타고 가다 보면 만나는 낙화암은 가히 절경이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거울처럼 하늘이 비치는 수면의 풍경이 황홀할 지경이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여행의 마무리를 짓기에 완벽하게 여유롭고, 또 특별한 순간이 되어준다.
돛배를 타고 가다 보면 다른 돛배가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데, 그 풍경이 굉장히 색다르다.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백제로 시간을 돌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토속적인 돼지주물럭과 쌈, 돌솥밥, 구드래돌쌈밥
주문 즉시 테이블에서 조리해 주는 돼지주물럭은 익어가는 순간부터 매콤한 냄새를 솔솔 풍긴다. 양배추와 부추, 붉은 양념에 익어가는 돼지고기. 보기만 해도 군침이 살 돈다. 찰기가 도는 돌솥밥을 쌈 채소에 얹은 다음 큼지막한 고기까지 넣어 쌈을 먹어본다. 입안 가득 다채로운 맛이 퍼진다. 특히 주물럭 양념은 짜지도 않아서 부담이 없다. 고기도 육질이 부드러우니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외에도 가지각색의 다양한 반찬이 있으니, 화려하지 않아도 배가 금세 든든해지는 식사다.
삼국시대 백제 왕궁을 재현한 테마파크, 백제문화단지
백제의 역사,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백제문화단지가 딱이다. 이곳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역사 테마파크다. 넓은 부지에 백제 왕궁을 재현한 건물부터 마을, 사찰 등 다양한 흔적들을 지어 올렸다.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사비궁부터 백제역사문화관, 테마 아울렛 등 한 장소에서 봐야 할 곳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사비 궁은 백제의 섬세한 건축양식과 화려함을 완벽하게 살려 놓았다. 궁 안에서는 국궁 체험, 의상 체험 등 다양한 즐길 거리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사비궁 안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곳은 백제 왕실의 사찰인 ‘능사’다. 부여 능산리 사지를 실물 크기로 복원했단다. 능사 5 층 석탑도 백제시대의 목탑을 고스란히 재현했는데, 높이가 무려 38미터다.
사비궁 왼편에는 생활문화 마을이 있다. 백제 사비시대의 다양한 사람들의 주거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궁의 화려함과 반대로, 생활상이 묻어난 마을에는 계층별 주거유형과 생활 모습을 재현했다고.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의 흔적은 없는, 깨끗한 모습이지만 아주 잠깐 백제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지 않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 궁남지
서동요의 전설은 역사와 문화 수업을 들은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서동이 퍼트린 노래로 귀양 오게 된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궁남지는 바로 이 서동요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겨울에도 황홀한 분위기를 풍긴다. 크고 넓은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포룡정, 청색의 물빛,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까지, 아련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름다운 장소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이다. 연못 중앙에 있는 작은 섬에는 단정한 모양새의 전각이 서 있고, 섬까지 이어주는 다리는 물 위에 얹어 놓은 듯하다. 여름이면 단아한 연꽃이 한가득 치어난다고 한다. 보통은 수변을 크게 한 바퀴 돌면서 감상하는데,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포룡정에 가만히 앉아서 분위기를 즐겨도 괜찮지만, 추울 수 있으니 주변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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