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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순간]


제주 한달 살기_PART 1.

 

 

글 / 사진 _ 길정현(여행작가)


 

 

 

 

 

  '한달살기' 등은 펜데믹 이전부터 꽤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였다.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시아가 그 대상이었고 치앙마이 등은 관련하여 굉장히 핫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 또한 여행작가로서 이런 일을 해보고는 싶었지만 쉬이 실행하지 못하던 차에 펜데믹이 덮쳤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이후 2년여의 기간을 육아에 함몰되어, 반은 자의로, 또 반은 타의로 여행없이 잘 버텼다.  

 

하지만 아이는 클수록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못 견뎌했다. 그리고 이 타이밍은 오미크론이 창궐하던 시기와도 묘하게 맞물렸다. 사방이 오미크론 확진, 혹은 오미크론 의심 환자였다. 우리는 오미크론이 이 펜데믹의 마지막 관문이기를 소망하며 전염병을 피해 제주로 갔다.   

 

이 포인트에서 제주 사람들은 분노할지도 모른다. 육지에서 다 이쪽으로 들어와 되레 청정제주에 전염병을 퍼트렸다고, 여기가 외지인들 피난하라고 있는 곳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궁색한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는 제주에 적(籍)을 두고 있다. 남편이 제주 사람이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본가의 그 돌담 시골집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어느덧 돌담 안까지 오미크론이 넘어들었기 때문에 외부에 별도의 숙소를 잡고 한달살기를 해야했다. 

 

그렇게 끝나는 듯 싶던 코로나19는 요즘 들어 다시 재확산 중이다. 해외여행을 꿈꿨던 이들은 다시 국내 여행을, 제주 여행을 계획한다. 이 글이 누군가의 제주 여행에, 특히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제주다움을 한껏 품은 테마파크

돌하르방 미술관

 

 

  제주엔 각종 테마파크가 많기도 하다. 기껏 제주까지 와서 제주와 아무 관련도 없어보이는 캐릭터 테마파크에 가야해?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야한다. 제주와의 연관성보다 내 아이가 즐거워하는 것이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꼭 제주가 아니어도 ‘지명 + 아이와 함께하기 좋은 곳’이라는 검색어가 언제나 핫한 것은 당연하다. 아이의 즐거운 한 때를 위해 양육자들은 기꺼이 운전대를 잡고 또 지갑을 연다.

 

그럼에도 제주 특색이 있는 테마파크가 못내 아쉽다면 돌하르방 미술관을 살짝 추천하고 싶다. 북촌에 위치한 돌하르방 미술관은 제주 토박이 예술가인 김남흥 원장님이 ‘제주다움’을 주제로 20년 이상을 가꿔온 곳이다. 미술관이라고 해도 실은 전부 야외여서 조각 공원의 느낌인데 은근 규모도 크고 꽤나 구색을 갖추어 하나하나 재미있게 연출해두었다.   

 

곶자왈 산책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 속에서 여러 모습의 돌하르방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꼭 돌하르방이 아니어도 신경써서 꾸며둔 포토존도 제법 많이 있고 돌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와 어린이 도서관도 있어 아이와 함께라면 한번쯤 가봄직한 곳이다. 게다가 한적하기까지! 

 

 

 

 

 

다만 돌하르방이라는 소재 특성상 비오는 날이나 을씨년스러운 날엔 좀 음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니 맑은 날 방문하는 것을 추천해본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아주 맑은 날은 아니었고 약간 흐린 날이긴 했는데 신나게 비누방울을 날리며 음침함도 함께 날려버렸다. 

 

주소 :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서1길 70
홈페이지 : www.instagram.com/dolharbangmuseum_official
전화번호 : 064-782-0570
운영시간 : 4~10월은 9시부터 18시까지 / 11~3월은 9시부터 17시까지
입장료 : 성인 7000원 (도민은 1000원 할인), 소인 5000원, 36개월 미만은 무료입장
특이사항 : 가파른 길은 아니지만 산길을 산책하는 느낌이라 유모차는 다소 불편할 수도

 

 


  

 

 

 

따뜻한 힐링이 뭔지 느낄 수 있었던 공간

시월희

 

 

대부분의 찻집은 커피도 겸하고 있지만 여긴 정말 차 뿐! 시월희는 중국차, 대만차 전문점이라 요약할 수 있다. 차는 본인이 팽주가 되어 직접 우려마실 수도 있고 사장님 부부가 해주실 수도 있는데 아이가 있다보니 우리는 후자로 진행, 두어시간 동안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생전 처음만난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대개 피상적이고 뻔한 것들이 되기 쉬운데 시월희에서의 대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게 바로 이 집만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아기자기한 기물에 품질 좋은 차를 제공하는 찻집은 요즘 부쩍 늘었지만 사람 자체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여전히 흔치 않기에 시월희에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홀린 듯이 오래도록 앉아있었다는. 자극적이지 않고 매력적이던 다식들 또한 전부 이 곳에서 자체적으로 만드신 것들이니 기회되면 꼭 함께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5길 29 1층 (돌하르방 미술관에서 차로 5분 거리)
홈페이지 : www.instagram.com/siwolhee
운영시간 : 수~일 11~18시 (월,화 정기휴무)
특이사항 : 비정기 휴무가 있을 수 있어 사전에 인스타그램 등에서 확인 후 방문하는 것을 권장


 


 

 

 

  

 

인스타그램 핫플!

김창열 미술관



 
요즘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 자주 보이는 곳 중 한 곳인 김창열 미술관. 화면에서 보여지는 것과 달리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인데 이 근처 풍경과 분위기가 무척 좋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느낌. 또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주위 환경과 아주 잘 어울린다.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이 곳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나의 그림은 모든 것을 물방울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보내기 위한 행위’라는 그의 말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 화백은 어쩌면 아직도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인물이다. 김 화백은 박서보 화백 등과 함께 한국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앵포르멜 미술운동(기하학적 추상에서 표현주의적 추상으로 변모)을 이끌기도 했으며, 1969년 제7회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물방울과 관련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았고, 2013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2017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기도 했다.

 

 

 


김 화백은 본래 제주도민은 아니지만 6.25 전쟁 때 제주로 피난을 와 머무르면서 이곳을 제 2의 고향으로 삼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200여점의 작품을 제주에 기증했다. 이에 제주에 김창열 미술관이 생긴 것!  

 

미술관 건물은 回자 형상이다. 김 화백은 건물이 본인의 작품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무덤’의 형태가 되기를 바랐다고 하는데, 이에 미술관의 건축을 의뢰받은 건축가는 김 화백의 작품 속 물방울들이 그러하듯 ‘회귀’의 의미를 담아 回자 형상의 건물을 구상했다고. 전시실 사이의 통로는 무덤으로 들어가듯 대체로 어둡지만 그 와중에 빛이 지나다니는 길이 나있어 관람객들은 이 빛을 따라 발을 옮긴다. 지형 특성상 모든 동선을 거쳐 위로 올라가면 절로 지상이 되는지라 잠시 무덤 안, 지하 세계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실내외 마감재를 동일하게 사용해 의도적으로 건물의 내외를 구분짓지 않은 것도 독특한 점. 즉,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주소 : 제주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홈페이지 : kimtschang-yeul.jeju.go.kr
전화번호 : 064-710-4150
운영시간 : 화~일 9~18시 (월 정기 휴무)
입장료 : 성인 2000원, 어린이 500원 (도민은 50% 할인)
특이사항 :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제로 운영 중
유모차 무료 대여 (실내에서만 이용 가능)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무드

바이나흐튼 크리스마스 박물관

 

 

이 곳은 한 크리스마스 덕후가 사심과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든 사립 박물관으로 독일 로텐부르크의 바이나흐튼 뮤지엄을 작은 규모로 옮겨온 곳이다. 한 마디로 일년 내내 크리스마스 무드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곳! 호두까기 인형 색칠하기, 크리스마스 램프 만들기 등 각종 체험도 가능하며 진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앞마당에서 크리스마스 마켓 등도 열린다고 하니 일정이 맞으면 이 또한 꼭 경험해보자.


이 곳 또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빈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구경거리들이 꽉 차 있어 빠르게 휙 돌아보는 것보다는 허리를 숙여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한 곳이다. 거대한 사이즈의 오르골들과 100여번의 공정을 거쳐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각종 호두까기 인형들이 이 곳의 백미. 특히 오르골의 경우는 아이가 쉬이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정교하고 재미있다. 아직 아이가 어려 크리스마스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 정도 관심을 보인 걸로 미루어 보면, 크리스마스가 뭔지 알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흥미롭게 둘러볼 수 있을 듯 하다. 

 

 

 

크리스마스 박물관 옆 별채 ‘토마스 하우스’에는 영국과 미국, 독일 등에서 수집한 빈티지 소품들이 즐비하다. 빈티지 골무와 티스푼 등도 한두개 있으면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한데 모여 있으니 입이 떡 벌어진다. 이 곳에서 특히 눈여겨 볼 물건은 벽에 거는 장식용 접시로, 그 중에서도 바로 연도 접시다. 유럽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해당 연도가 박힌 접시를 구매해뒀다가 나중에 물려주기도 한다고. 연도 접시의 경우에는 한정 수량만 찍어낸 후 접시 몰드 자체를 파쇄하는 경우가 많아 모든 접시가 다 한정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만큼 가격대도 만만치 않으니 이 곳에서 눈으로나마 실컷 보고 가자. 

 

 크리스마스 박물관과 토마스 하우스 사이에는 ‘리지 코티지’라는 이름의 카페도 있으니 짬을 내어세 군데 모두 한꺼번에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주소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평화로 654
홈페이지 : www.instagram.com/jejuchristmasmuseum
전화번호 : 010-4602-7976
운영시간 : 매일 10시 30분~18시
입장료 : 자유로운 액수의 기부금으로 운영 (체험비는 별도이며 체험마다 상이)
특이사항 : 내부가 좁고 계단을 올라야 해 유모차 사용은 사실상 불가

 

 


 

 

길정현 작가 :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후, 대한항공에 11년 째 근무하며 틈틈히 여행을 다니고,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고작 5일>, <그리하여 세상의 끝 포르투갈>, <프로방스 미술 산책>, <고양이와 함께 티 테이블 위 세계정복>, <미술과 건축으로 걷다, 스페인>, <1일 1면식>, <예술가와 네 발 달린 친구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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