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 그릇]
‘닭도리탕’의 설움과
‘치맥’의 영광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닭은 서럽다. ‘닭대가리’ ‘촌닭’ ‘씨암탉 잡는다’ 등 닭에 관한 말 중 좋은 표현이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의 말속에 이토록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친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기를 얻기 위한 대표적인 가축은 소나 돼지이지만 크기가 커서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맛을 보기 힘들다. 오랜 시간 동안 키워 내야 하니 기르기도 만만치 않다. 이에 비해 닭은 풀, 곡식, 곤충 등 닥치는 대로 먹으니 키우기도 쉽고 크기도 적당해 잡기도 쉽다. 알도 먹고 닭도 먹을 수 있는 고마운 단백질 공급원이니 모두가 감사할 대상이기도 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최고의 닭 요리법은 백숙이다. 편안한 환경에서 다양한 먹이를 먹고 자란 닭들은 그저 푹 삶아내 소금만 찍어 먹어도 훌륭하다. 요즘은 ‘토종닭’이라고 불리는 닭이 바로 이런 닭이고, 이 토종닭을 재료로 한 대표적인 요리는 역시 백숙이다. 재료가 맛이 있으니 특별히 다른 양념을 할 필요도 없고, 맛을 더하기 위해 기름에 튀겨내 온갖 소스를 곁들일 이유도 없다. 다소 질긴 듯하지만 퍽퍽하지 않고 찰진 맛이 느껴지는 것이 토종닭이다.
토종닭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뜻만 고려한다면 수입닭이 맞겠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말이 쓰인다. 자유롭게 놓아먹인 닭이 아니라 대규모 양계장에서 길러낸 닭이 토종닭의 반대말로 쓰인다. 고기를 먹기 위한 육계(肉鷄)든, 알을 얻기 위한 산란계(産卵鷄)든 요즘은 좁은 양계장에서 정해진 사료로 길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닭이 토종닭보다 맛있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규모 양계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는 설이 있는 닭요리가 있는데 ‘닭도리탕’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본격화된 산란계 양계장. 많은 알을 손쉽게 얻는 것까지는 좋은데 산란율이 떨어진 노계(老鷄)의 처리가 문제였다. 좁은 공간에 갇혀 일생 동안 알만 낳다가 늙어버린 닭이니 고기가 맛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으니 갖은양념에 각종 채소까지 넣어 진하게 끓여낸 것이 닭도리탕이란 것이다.
이런 탄생 비화는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는데 엉뚱하게도 그 이름에서 문제가 생겼다. 우리말 순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누군가가 ‘닭도리탕’의 ‘도리’가 새나 닭을 뜻하는 일본말 ‘도리(とり)’에서 왔으니 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요리의 이름을 지을 때 ‘닭닭탕’ 또는 ‘닭새탕’으로 지었을 것이라는 발상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더욱이 그 대체어로 제기된 ‘닭볶음탕’은 ‘볶음’과 ‘탕’이 결합됐다는 점에서 요리의 기본도 모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닭도 서럽지만 닭도리탕도 서럽다. 본래 ‘도리탕’이란 음식이 있었는데 닭을 재료로 했으니 닭도리탕이 됐다는 설은 일리가 있다. 이 음식은 일찍부터 있었는데 닭을 주재료로 한 일본음식 ‘도리나베(とりなべ)’가 들어오면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설도 나름대로 타당하다. 문제는 일본어에서 온 것인지 분명하지도 않은데 일본말에 ‘도리’가 있다는 이유로 닭도리탕은 쓰지 말아야 할 이름이 되었다는 데 있다. 게다가 닭볶음탕이란 말도 안 되는 이름을 쓰도록 강요받았다는 것도 문제다.
대규모 양계의 또 다른 부산물로 들 수 있는 것이 ‘프라이드치킨(fried chicken)’이다. 고무신을 재료로 해도 맛있다는 것이 튀김 요리이니 닭의 맛을 극대화시키거나 재료만으로는 부족한 맛을 내기 위한 것이 프라이드치킨일 가능성이 있다. 요즘에는 40일 안팎의 기간 동안 속성으로 키워낸 ‘병아리 닭’을 재료로 쓰고 있으니 더더욱 개연성이 있다. 염지 후 튀김옷을 입혀 잘 튀겨낸 후 갖가지 소스를 곁들이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
프라이드치킨은 본고장인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몇 집 건너 치킨집이 있고, 수없이 많은 비법이 개발돼 우리의 입맛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고 있다. 그 결과 ‘닭’에 대응되는 단어 ‘치킨’은 튀기거나, 튀긴 후 양념을 가한 닭요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이 치킨에 맥주가 잘 어울린다고 해서 ‘치맥’이란 새로운 말도 만들어져 마치 우리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냥 세계에 소개되고 있다.
음식은 죄가 없는데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치킨’과 ‘맥주’에서 한 글자씩을 따내어 만든 ‘치맥’은 여러모로 정상적인 단어는 아니다. ‘닭’에 대응되는 영어단어를 그대로 가져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은 우리말 순화론자들의 눈으로 보면 마뜩잖다. 게다가 영어와 한자어의 일부를 결합해 단어를 만드는 것은 이제까지는 없었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닭도리탕’은 쓰지 못하게 하면서 ‘치킨’이나 ‘치맥’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도 균형 잡힌 시각은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그래도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시각은 필요하다. 맛없는 고기일지라도 알뜰하게 먹기 위한 방안으로 개발된 요리를 엉뚱한 이유를 들어 못살게 구는 것은 옳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치킨과 치맥에 대해 과도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