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로 보는 죽음과 장례식
죽음은 우리에게 여전히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그 호기심과 궁금증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의 작품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입니다. 여기, 죽음과 장례식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보고 나면 죽음의 세계가 보여주는 낯섦에 놀라고, 역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나의 죽음 이후에도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죽음과 장례방식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오늘은 죽음과 장례식을 다룬 영화 3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 숨 (2025, 한국, 72분)
- 윤재호 감독, 유재철, 김새별 출연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 영화 <숨>은 이 세 사람의 삶과 직업을 통해 죽음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대통령은 물론 큰스님들의 장례식을 도맡으며 이름을 알린 유재철 장례지도사, 고인의 마지막 이사를 돕는 유품정리사 김새별 씨, 그리고 파지를 주우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노인을 중심으로 죽음을 가장 근거리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을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담담히 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에 몇 번 없는 경험이거나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죽음을 영화 속 주인공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합니다. 이승으로 가는 문 앞에서 그들은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또 떠나는 이가 쓸쓸하지 않도록 예를 다해 배웅하거나, 고인이 남긴 흔적들을 정리해 주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떠날 때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영화는 우리 삶의 마지막이 인간다울 수 있도록 돕는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의 일을 깊숙이 담아내며 누군가의, 혹은 우리의 마지막 모습일지 모를 그 일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합니다.
막상 닥쳐오지 않으면 우리에게 너무 먼 이야기인 죽음. 그래서 어떤 계기가 있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죽음보다 삶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그 마지막이 아름다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주하기를 꺼려온 죽음의 거부할 수 없는 얼굴을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언젠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죽음과 남겨진 자의 몫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코코 (2018, 미국, 104분)
- 리 언크리치 감독, 안소니 곤잘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출연
소년 미겔은 뮤지션이 되고 싶지만, 음악을 사랑했던 고조할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이 있는 고조할머니의 영향으로 집안 대대로 음악을 금지하는 분위기 속에 자랍니다. 하지만 ‘망자의 날’에 열리는 음악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게 되고, 전설의 음악가 델라크루즈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되며 모험은 시작됩니다.
멕시코의 고유 명절인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멕시코의 전통 문화와 음악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풍습까지 애니메이션으로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죽은 자들의 날’이라고도 불리는 이 날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일년에 한 번, 산 자들을 만나기 위해 금잔화 다리를 건너 이승으로 찾아온다고 믿는 멕시코인들의 전통에 따라 매년 10월 31일~11월 2일(3일간)에 열립니다. 이날 멕시코 사람들은 집집마다 돌아가신 가족의 사진과 금잔화, 뼈무늬를 얹은 ‘죽은 자의 빵’을 올려 화려하게 제단을 장식하고 해골 분장을 한 채 거리로 나가 죽은 자들의 귀환을 환영하며 죽었던 가족과의 재회를 기뻐하고 즐깁니다.
죽음을 이승과의 단절로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멕시코 사람들은 죽음을 다른 세계로 가는 출발로 여깁니다. 타지로 떠난 가족이 명절이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망자의 날’은 가족이 재회하는 기쁜 날이며,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자연의 순환을 잘 보여주는 멕시코의 독창적인 문화입니다. 또한 축제 같은 이 이벤트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음악에 진심인 멕시코인들의 흥겨운 노래와 열정 넘치는 악기연주 입니다. 주인공 미겔이 뮤지션을 꿈꾼다는 설정을 비롯해 망자가 된 뮤지션들이 부르는 영화 속 OST의 높은 완성도는 이 영화가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일 뿐 아니라 진정한 음악영화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 굿바이 (2008, 일본, 130분)
- 다키타 요지로 감독,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 출연
도쿄의 오케스트라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갑작스런 악단 해체로 실직하게 되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새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가 고향에서 구한 직업은 다름 아닌 납관 도우미.
‘납관사’라고도 불리는 이 직업은 망자가 관에 들어가기 전 생전 모습처럼 보이도록 몸을 닦고, 옷을 입히는 등 시신을 정돈해주는 일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장례지도사가 이 업무까지 도맡아 하지만, 일본의 납관사는 시신처리 부분을 좀 더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됩니다. 만일 사고 등으로 시신이 훼손됐다면 손상된 부분을 복원하는 업무도 진행하므로 유족들에게 고인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추억을 남겨준다는 면에서 납관사의 역할은 그 가치와 역할이 큽니다. 다이고는 이런 납관사라는 직업에 조금씩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요, 한국과 비슷하게 일본도 시체를 만지는 일을 터부시하는지라 다이고는 아내와 주변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좌절하게 됩니다.
영화는 첼리스트라는 직업의 주인공이 첼로가 아닌 죽음에 이른 인간의 몸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한편의 첼로 연주처럼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는 묵직한 첼로 선율은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의 작품으로, 음악을 통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드러냅니다. 더불어, 영화를 통해 낯선 일본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