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 그릇]
밥도 아닌 것이 국도 아닌 것이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밥상의 주인은 무엇일까? ‘밥상’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연히 밥이다. 그러나 우리의 밥상에서 밥 옆에 항상 놓이는 국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상차림을 마무리하려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아야 하는 데 옛날부터 우리의 상에서 빠지지 않는 이 숟가락의 존재가 국의 중요성을 뒷받침해준다. 밥상의 주인인 밥과 국이 한 그릇에 담긴 것이 국밥인데 단어의 구성상 ‘국밥’에서 주인공은 국이다. 그런데 밥인 듯, 국인 듯 묘한 음식이 바로 떡국이다. 국도 밥도 아닌 이 떡국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주전부리는 요즘에도 쓰는 단어지만 확실히 옛날 냄새가 난다. 이 단어보다는 후식, 간식, 야식 등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더 친숙하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주전부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운 시절에도 주전부리란 말과 그것이 가리키는 음식이 있어서 우리의 군침을 돌게 했다. 여러 가지 주전부리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떡이다. 쌀을 주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밥과 닮았지만 독특한 모양과 맛을 낸다는 점에서 밥과 확연히 구별되기도 한다.
떡이 쌀을 주재료로 하지만 별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제 떡을 먹는지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이지만 과거에는 잔칫날, 제삿날, 명절날 등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것이 떡이었다. 돌상부터 환갑상까지, 그리고 죽어서는 제사상까지 기념할 만한 날에 먹었고, 명절에도 빠지질 않았다. 게다가 아무것도 넣지 않고 희게 지어내야만 최고로 치는 밥과 달리 각종 재료를 넣기도 하고 묻히기도 하는 떡은 특별한 맛을 제공하는 음식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떡이 하나 있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굵기로 길게 뽑아내는 ‘가래떡’이 그것이다. 요즘에는 기계를 이용해 쌀을 가루로 만든 뒤 김을 올려 쪄서 기계로 뽑아내지만 기계가 없을 때에는 만들기가 꽤나 힘들었다. 쌀가루를 내어 쪄낸 뒤 절구에서 쳐내기까지의 과정은 다른 떡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손으로 일일이 밀어 길고도 둥글게 만들어낸다. 이렇게 길고도 둥글게 만들어 내니 가래떡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가래떡의 다른 이름은 ‘흰떡’이다. 쌀가루에 소금간만 조금 한 뒤 다른 어떤 것도 넣지도, 묻히지도 않으니 흰색일 수밖에 없어 흰떡인 것이다. 검은떡, 노란떡 등 떡의 이름에 색깔이 들어간 다른 떡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떡의 이름이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흰떡’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이 떡의 정체를 엿볼 수 있다. 다른 떡들은 소나 고물을 더해 그것만으로 즐기는데 이 떡은 둥글고 길게 뽑아놓은 그 상태로 먹는 일이 드물다. 꾸득꾸득 말린 후 일정한 두께로 어슷하게 썬 뒤 떡국의 재료로 쓴다. 국물은 따로 내고 고명도 따로 얹으니 흰떡이어도 상관없고, 오히려 흰떡이어야 하는 것이다.
떡국의 재료는 가래떡을 어슷하게 썬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성지방에서는 둥글고 긴 가래로 뽑아내어 자르는 대신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와 굵기로 허리를 잘록하게 만든 조랭이떡을 떡국의 재료로 쓴다. 만드는 과정과 모양만 다를 뿐 나머지는 가래떡을 쓴 떡국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가공하든 결국은 밥이 아닌 밥을 국에 말아놓은 것이다. 국은 국이로되 밥과 똑같은 재료가 들어 있으니 밥도 될 수 있는 것이 떡국이다. 비록 이름은 ‘떡국’이지만 ‘밥국’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떡국이다. 그것도 한 해를 시작하는 날 나이 한 살과 같이 먹는 특별한 밥이자 국이니 의미가 더해진다.
밥도 아닌, 그렇다고 국도 아닌 이 떡국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죽도 밥도 아니다’란 표현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비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밥도 국도 아닌 떡국은 어떤가? 밥도 아니고 국도 아니 데서 끝났으면 떡국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는 어렵다. 그런데 떡국은 오히려 밥이기도 하고 국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밥과 같은 재료를 써서 먹으면 든든하고, 국과 같은 방법으로 조리해 내니 깊은 맛이 느껴진다. 한 해에 하루쯤은 밥상의 두 주인이 어우러진 떡국이 상에 오를 법도 하다.
오늘날처럼 지식의 양이 많아지고 체계가 복잡해진 상황 속에서는 여러 방면에 다재다능한 사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죽도 밥도 아닌 얼치기보다는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스페셜 리스트를 요구한다. 그러나 밥이기도 하고 국이기도 한 인재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하다.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말이 다시금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밥은 밥대로, 국은 국대로 상에 올라야 하는 법이지만 설날 하루쯤은 밥이기도 하고 국이기도 해야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법도 하다.
밥그릇의 수가 그 사람의 연륜과 경험을 나타내기도 한다. 밥 한 그릇은 한끼이고, 밥 세 그릇은 하루이다. 그러나 떡국 한 그릇은 나이 한 살이다. 삼시세끼 밥 한 그릇씩 먹으면서 그날그날의 삶에 충실했다면 새해 첫날 떡국 한 그릇을 먹을 때는 보다 긴 호흡으로 삶을 돌아보고 설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밥인지 죽인지 선택하도록 강요를 받았다면 이날 하루만은 밥이기도 하고 국이기도 한 삶을 그려볼 만하다. 떡국을 먹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