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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 그릇]

 

따로와 같이

그리고 또 따로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국과 밥은 기본이다. 밥만 먹으면 목이 메기 쉬운데 국물과 함께 먹으면 밥이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으니 그렇다. 밥은 싱겁기 짝이 없는데 적당히 간이 맞는 국과 함께 먹으면 밥맛도 더 살아난다. 밥과 국을 따로 먹다가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훌훌 떠 넣기에 좋다. 소화는 부담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먹을 때는 편하게 먹을 수 있다. 국밥은 이렇게 탄생했다. 본래 따로 담아서 따로 먹는 것이 밥과 국인데 말아 먹는 일이 잦다 보니 아예 국에 말아서 나오는 것이 국밥이다. 국과 밥을 따로 차려 내면 백반이 되지만 국에 밥을 말아 내면 일품요리가 된다. 콩나물국은 그저 밥 옆에 높인 국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뚝배기에 찬밥과 함께 담아 끓여내면 근사한 콩나물 국밥이 된다.

 

국밥의 대표는 역시 장터국밥이다. 지방의 조그마한 소읍이라도 장날만은 분주하다. 오고가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들 모두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상설 시장이 아니니 따로 밥집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점심 요기는 해야 하는 법,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고기와 채소를 넣고 국을 끓인다. 흰 쌀밥도 가마솥 하나 가득 지어 놓는다. 손님이 오면 뚝배기를 닮은 커다란 그릇 하나를 내어 밥을 한 덩이 푼 뒤 국물을 몇 번씩 토렴하여 상에 올린다. 반찬은 깍두기 한 접시. 파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한끼를 재빨리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국밥이다.  

 

그런데 따로국밥의 등장은 아이러니하다. 국밥은 국밥이되 국에 밥이 말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과 밥이 따로 나온다 해서 따로국밥이다. 본래 따로 상에 내던 국과 밥을 하나로 합친 것이 국밥인데 국과 밥을 따로 내면서 국밥이라 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따로국밥은 다분히 국밥의 인기에 편승한 면이 강하다. 국밥이 인기 메뉴가 된 이후 그 명성은 이어가되 국과 밥을 따로 내어 품위도 높이고 국의 고유한 맛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따로국밥이란 이름은 대구에서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따로국밥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지 않더라도 요즘의 국밥은 대개 밥과 국이 따로 나온다. 순댓국, 선짓국, 육개장, 설렁탕 등 모두 마찬가지다.  

 

 

 

 

국과 밥을 따로 낸다고 해서 따로국밥이 되었는데 ‘따로국밥’이란 말 자체도 단어가 따로 논다. ‘따로’는 ‘국밥’과 같은 명사는 꾸밀 수 없고 ‘먹다’와 같은 동사를 꾸며야 한다. 그러니 ‘따로국밥’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 본래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국밥’일 텐데 적당히 줄여 만든 것이다. 어법상으로는 틀렸을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신조어이기도 하다. 따뜻한 국과 밥을 손님에게 내놓고자 하는 주인장의 마음, 따뜻한 국과 밥으로 몸과 마음을 녹이는 손님들의 기쁨이 어우러질 수 있는 말이니 정겹기도 하다.  

 

밥과 국이 따로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같이 있어야 하는가? 본래 다른 것이니 따로 있는 것이 맞다. 빨리, 편하게 먹기 위해서 국밥으로 내는 것도 괜찮다. 국의 참맛을 즐기다가 적절한 시점에 말아 먹을 수 있도록 따로국밥으로 내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본래의 정체성에 따라, 혹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먹는 것이 음식이다. 국과 밥은 따로 떠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말아 먹어야 하는가? 이것도 개인의 취향이다. 애초에 말아져 나온 국밥이야 어쩔 수 없지만 본래 따로인 국과 밥, 혹은 따로국밥은 먹는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따로국밥’과 ‘말아먹다’는 다른 뜻으로 쓰인다. 같이 있어야 할 것이 겉으로는 같이 있되 따로 놀고 있으면 따로국밥이라고 표현한다. ‘말아먹다’는 흔히 재물 등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국에 밥을 말면 훌훌 넘어간다. 그렇게 훌훌 밥과 국을 넘기듯이 재물을 홀랑 날려 버리는 것이 말아먹는 것이다. 따뜻한 국물과 건더기를 즐기라고 끓여 내는 것이 국이다. 편하고도 빨리 먹으라고 함께 말아 내는 것이 국밥이다. 국의 맛을 더 음미하라고 만든 것이 따로국밥이다.그러나 따로국밥이나 말아먹다 모두 현실에서는 긍정적으로 쓰이는 법이 없으니 국과 밥의 처지에선 꽤나 억울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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