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한 그릇]
전의 동아시아 전전기
글 _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잔치나 명절은 온 집안에 진동하는 기름 냄새로 먼저 온다. 갖가지 재료를 준비해 계란 옷을 입히고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내는 음식 냄새 때문이다. 이러한 음식들은 ‘전(煎)’으로 통칭되는데 다진 고기, 생선포와 같은 육류가 먼저 떠오른다. 기름에 지져냈다고 해서 ‘전유(煎油)’라 하기도 하고 ‘전유어(煎油魚)’라고도 한다. ‘전유어’는 말로만 보면 생선을 재료로 한 것이어야 하지만 고기도 같이 일컫는다. 이것이 말이 바뀌고 바뀌어 ‘저냐’로 불리게 된다. 돼지고기를 다져 다른 재료와 섞은 후 동그랗게 지져낸 것은 ‘돈저냐’란 점잖은 이름이 있지만 그 모양 때문에 붙여진 ‘동그랑땡’이 우리에겐 훨씬 더 친숙하다.
우리말에서 기름을 듬뿍 두르고 하는 조리법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지 좀 헷갈릴 때가 있다. 특히 ‘지지다’란 말이 그렇다. 이 말은 기름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감기 걸렸을 때 뜨거운 아랫목에 몸을 지진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더 그렇다. 오히려 ‘부치다’란 말이 더 정확해 보이기도 한다. 이 말은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익혀내는 것에만 쓰이니 혼동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조리법은 음식의 이름으로까지 발전을 한다. ‘지짐’과 ‘부침’이 그것인데 ‘지짐이’ ‘부침개’와 같이 다른 말을 뒤에 덧붙이기도 한다. ‘전’이 한자어라면 ‘지짐’과 ‘부침’은 우리의 고유한 말이라서 그 느낌이 훨씬 더 빨리 와닿는다. 말만 들어도 고소한 기름 냄새와 자글자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록 같은 음식을 두고도 지역에 따라 ‘지짐’이라 하기도 하고 ‘부침’이라 하기도 하지만 정겨운 말인 것은 확실하다.
지짐, 혹은 부침의 대표는 역시 빈대떡이다. 요즘의 빈대떡은 녹두를 갈아 몇 가지 소와 버무린 뒤 지져 내거나 부쳐내는 것인데, 그 맛이야 모두가 동의를 하지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떡이 아닌데 떡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문제가 된다. 곡물의 가루를 내어 찐 것이 아니라 묽게 반죽을 해서 지져냈는데 떡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다. ‘떡’ 앞에 붙은 ‘빈대’도 정체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의 피를 빠는 ‘빈대’일리는 없으니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빈대떡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빈자(貧者)떡’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덕수궁 뒤에 ‘빈대골’이 있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이 부침개 장사를 많이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보인다. 그러나 모두 개연성이 떨어지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옛 문헌에 이미 한글로 ‘빙쟈’로 써 놓은 것이 나오니 이것과 관련 지을 수도 있다. ‘餠(떡 병)’은 떡을 뜻하지만 우리 한자음으로는 ‘병’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빙’이다. 그러니 기록이 맞다면 이 음식과 이름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일 가능성이 꽤 있다.
그런데 이 한자 ‘餠’이 문제다. ‘餠’은 우리말에서는 떡으로 쓰이지만 중국어에서는 훨씬 더 넓은 뜻으로 쓰인다. 즉, 굽거나 지지거나 쪄서 만든 둥글넓적한 밀가루 음식 전부를 뜻해서 부침개, 전, 전병, 빵, 떡 등을 모두 포괄한다. ‘전’이나 ‘전병’은 우리말에도 들어와 있는데 우리말에서는 떡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일본어에서의 ‘전병’은 한자 본래의 의미에 가까운 뜻으로 쓰이는데 우리에게는 또 전혀 다른 음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생과자’ 혹은 ‘센베이’라고 하는 것이 ‘煎餠’의 일본어식 발음 ‘센베이(せんべい)’에서 온 것이다. 같은 한자를 쓰지만 ‘煎’과 ‘餠’이 동아시아를 전전하면서 각기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전병’을 둘러 싼 여러 가지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말의 ‘젬병’이다. 이 말은 흔히 형편없는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데 ‘전병’에서 온 것으로 본다. 전병이 식으면 축 처지면서 그릇에 달라붙어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되니 형편없는 모습이다. ‘전병’을 빨리 발음하면 점병으로 소리가 나고 ‘어’가 ‘에’로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이니 설득력이 있다. 웬만해서는 유래를 알 수 없는 ‘젬병’이란 말이 동아시아를 전전하는 ‘煎’과 ‘餠’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만두의 일종인 중국의 ‘훈둔’이 일본에 들어가 ‘우동’이 된 후 한국에 들어와서는 ‘중국집’ 메뉴로 팔린다. 일본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화교가 중국의 면 요리 초마면을 기초로 만든 ‘잔폰’이 한국에 들어와 ‘짬뽕’이 되고, 이것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한식 초마면’으로 소개된다. 이처럼 한중일 삼국의 음식은 각 나라를 돌고 돌면서 변화되고 발전된다.